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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21세기 인문학 리포트] 인문학의 쉬움과 어려움

[21세기 인문학 리포트] 인문학의 쉬움과 어려움
단순화된 지식만 찾는 사이 갈망하던 진리는 안갯속으로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다. 그러니까 늘 인문학을 가까이해야 하며, 이는 인생 자체를 풍요롭게 한다고들 말한다. 또 기업인을 위한 인문학 강연 등은 인문학이 기업의 실질적 생산성에도 얼마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다소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문학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감동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문학은 어렵다. 이게 제일 큰 문제 아닐까.

인문학이 쉽고 재미있기만 했다면 한때 널리 퍼졌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없었을 것이고, 공부하지 말라고 쫓아다니며 말려도 인문학은 온라인 게임처럼 널리 퍼졌을 것이다. 게임중독자처럼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앉아 컵라면으로 여러 날을 버티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흐뭇한 광경을 떠올려 보라. 게임 아이템을 갈망하듯 철학 논문을 희구하는 기적은 또 어떤가. 다 쓸쓸한 공상이다.

인문학이 어려운 까닭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사람들은 불평한다. 인문학자들의 글은 용어에서부터 서술까지 너무 어렵다고. 정말 대학 안에 고립된 전문적인 책들의 높은 벽이 존재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인문학적 내용들을 `쉽게` 풀어주는 책들과 강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도 난처한 문제 하나가 찾아온다. 도대체 `쉬움`이란 무엇인가.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쉬움이란 개념의 모호성을 이렇게 비판한 바 있다. "그가 쉽다고 부르는 것과 어렵다고 부르는 것이 정말 무엇인가. 인간이 큰 어려움 없이는 짤 수 없을 거미줄을 거미는 쉽게 짠다." 이렇게 쉽다는 것은 그 기준이 불분명한 개념이다.

가끔 인문학 이론을 쉽게 서술한 책들을 펼쳐 보면 쉽게 서술한다는 명목 아래 전달해야 하는 지식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경우들을 본다. 이런 단순화된 지식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거기서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즐거움은 쉽게 누리지만 진정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경우는 적은 듯하다.

인문학자가 전문적인 견지에서 쓴 글은 어렵고 쉽게 풀어쓴 글은 진정 도달해야 할 인식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고…. 이것이 인문학 공급자들의 문제 아닐까.

이 문제는 곧바로 인문학 수요자 문제로 이어진다. 도대체 우리는 인문학 교육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각자의 의혹과 질문을 가지고 찾아갔을 때 인문학이 무슨 대답을 해주기를 기대하는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 관념을 인문학 안에서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인문학은 늘 사람들이 진리라 믿었던 것을 허물어뜨리고, 안전한 지반이라 믿었던 것을 의심에 부치며 우리를 새로운 길로 안내해 왔다. 자신의 진리를 보장받고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칭찬받으려고 인문학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실망하고 만다. 동전 한 푼 떨어져 있지 않은 가시밭길이 여기저기로 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겪는 이런 어려움은 바로 공부의 본성을 슬쩍 엿보게 해준다. 쉬운 공부란 없으며, 공부는 우리를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의혹에 빠뜨린다는 것. 공부란 상식과 현행의 가치에 찬동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의심에 부쳐 우리의 나날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인문학 공부 앞에서 한없는 기다림을 배운다. 투자와 그에 대한 성과 사이의 당혹스러운 불균형을 체험한다. 그리고 호기심과 탐구욕을 급히 만족시키려고 시작했던 공부의 정체가 실은 `인내`라는 것을 목격하고 놀란다.

요컨대 피할 길 없는 공부의 고통이 인문학에는 내재해 있는 것이다. 조급할 것 없지 않은가. 이것은 평생 먹어야 하는 쓴 약 같은 것이고, 아주 천천히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출처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257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