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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미분류철학

니체 사상의 핵심이 담긴 토막글들


Also sprach Zarathustra. "Zarathustra's Vorrede 3"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초인은 대지(大地)의 뜻이다. 너의 의지로 하여금 초인이 대지의 뜻임을 말하도록 하라!

나의 형제여, 너희들에게 맹세하거니와 이 대지에 성실하고 그리고 천상의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이를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독을 타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 죽어가는 자, 독에 중독된 자들로서 이 대지는 이들에게 지쳐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죽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가장 커다란 모독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죽었고 이와 같은 모독자도 그와 더불어 죽었다. 이제는 대지에 대한 모독이 가장 무서운 것이며, 이 대지의 뜻보다도, 탐구할 수 없는 것의 내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 또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진리는 현존하고 있고, 무지와 오류는 끝이 났다는 주장은 있을 수 있는 최대의 유혹 가운데 하나이다. ... 나는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기분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신뢰를 주고, 삶을 가볍게 해준다. 그것은 불신을 줄여주는 한, 성격을 개선시킨다. 영혼의 평화, 양심의 평정, 이것들 모두는 진리가 현존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날조이다.”(『Der Wille zur Macht』, 중에서)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것은 철두철미하게 먼저 조정되고, 단순화되고, 도식화되고 해석되어 있다. 인식론자가 실마리로 삼고 있는 「사유」는 하나의 순전히 제멋대로의 허구이며, 이해하기 쉽게 만들 목적으로 한, 하나의 인위적인 조정이다. 사유작용을 영위하는 어떤 것인 「정신」, 그것도 절대적인 정신이란 「사유」를 믿는 그릇된 자기관찰로부터 비롯된 결과이다.”(『권력에의 의지』)



“지금까지 모든 형이상학적 가정을 만들어낸 것은 정열과 오류와 자기기만이다. 최선이 아니라 최악의 인식방법이 이런 것을 믿게 했다. 현존하는 모든 종교와 형이상학의 기초로서 이런 방법을 폭로한다면 그것은 곧 그 방법을 부정하는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나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나의 거울에 비친 것을 그대에게 보여줄까? 그것은 발단도 종말도 없는 힘의 괴물이다. 그것은 증가도 없고 감소도 없고, 변화뿐 소멸이 없는, 전체로서의 크기엔 다를 바 없는 여문 구리쇠와도 같은 힘의 양, ... 힘은 골고루 퍼져 있고, 힘과 힘의 물결의 출렁거림으로써 하나이자 여럿이며, 여기에 쌓이는가 하면 저쪽에서는 줄어드는, 그 스스로의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그 스스로의 밖으로 넘쳐 나가는 힘의 바다, 영원히 변혁하고 영원히 귀환하는 회귀의 크나큰 세월을 갖고, 온갖 형세의 천만을 가지고,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을 만들어내면서, 가장 고요한 것, 가장 단단한 것, 가장 차거운 것에서 가장 뜨거운 것, 가장 사나운 것, 가장 자기모순적인 것으로 나아가고, 다시 풍요한 것에서 단순한 것, 모순된 희롱에서 조화의 즐거움으로 돌아오고, 이와 같은 스스로의 궤도와 세월의 동일성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면서 영겁으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서, 포만도 권태도 피로도 모르는 생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축복하는 것 - 영원히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영원히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의, 이 나의 디오니소스(dionysos)적 세계, 이중의 정욕을 지닌 이 비밀의 세계, 원환(圓環)의 행복에 목표가 없다고 하면 목표가 없는, 이 나의 선의의 피안 - 이 세계의 이름을 그대들은 듣고 싶은가 ..., 이 세계는 권력에의 의지이고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권력에의 의지』)




“무엇으로 가치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가? 상승하고 조직화된 권력량에 의해서 뿐이다. ... 삶은 어떠한 것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즉 삶은 권력의 성장형식의 표현이다.”(『권력에의 의지』)




“거대한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마지막 해방자이며, 거대한 의혹의 스승이다. ... 거대한 고통이야말로 시간을 갖고 오랫동안 천천히 스며드는 - 우리가 흡사 푸른 나무와 함께 불타고 있는 것처럼 - 저 거대한 고통이야말로 철학자를 우리의 마지막 심연에까지 침전케 하고, 아마도 이전에 우리의 인간성을 정립시켰던 모든 신뢰와 모든 선량함, 은폐, 온화함 그리고 부를 우리로부터 실행하게 한다. 나는 그러한 고통이 어떤 것을 개선시킬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나 고통이 우리를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Die fröhliche Wissenschaft』, 즐거운 학문)



“그러나 각성한 사람,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몸(Leib)이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혼이란 몸에 속하여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한 말에 불과하다. 몸은 하나의 거대한 이성, 하나의 의미를 가진 다양한, 전쟁과 평화, 짐승의 떼이며 목자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대의 작은 이성도 그대의 몸의 도구이고, 그대의 커다란 이성의 작은 도구이며 장남감에 불과하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긍정에의 나의 새로운 길 - 내가 지금까지 이해하고 생활해온 철학은 주로 생존의 추악하고 잔인한 것에 대해서조차도 의식적으로 행하는 추구이다. ... 나는 사람들이 종래에 변명해온 모든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을 익혔다. ... 에누리도 제외도 선택도 없는 긍정, 그것은 영원한 순환을 의미한다. 동일의 사물을, 동일의 윤리 및 비윤리를 바랜다. 한 사람의 철학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 - 생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태도를 취하기를 의욕한다. 이에 대한 나의 방식은 운명애(amor fati)이다.”(『권력에의 의지』)




“초인이라는 말은 최고로 완성된 유형의 인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대’인, ‘선한’ 인간, 기독교인, 그리고 다른 허무주의자들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그것은 기성도덕의 파괴자인 짜라투스트라의 입에 오르면 대단히 의심심장한 말이 된다.”(『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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