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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심리철학

두 가지 정신 개념 (Two Concept of Mind) - 박상욱

두 가지 정신 개념 (Two Concept of Mind)

     박 상 욱  

           


  1. 의식이란 무엇인가? (What is Consciousness?)

 

  우리에게 의식적 경험(conscious experience)은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장 신비스러운 것이다. 나의 의식은 내게 직접 알려지는 것이지만, 의식 경험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의식적 경험이 왜 존재하며?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잿빛의 물질 덩어리에서 생겨나는 것인가?라는 물음들에 관해서 우리는 어떠한 답도 가진 것이 없다.

의식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의식은 포착하기 아주 어려워서 그것에 관하여 조심스러워하는 설명조차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각과 사고(subliminal perception, unconscious thought)등의 말이 보여주듯이, 의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의식 개념의 핵심은, 적어도 가장 흥미있는 부분은 경험(experience)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가 아니고 기껏해야 명료화에 불과하다.

의식 개념을 더 원초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헛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시를 주고, 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식 경험을 가지며 따라서 다음의 특징들을 가진다.

내가 말할려는 것은 “경험의 주관적인 질적인 특질(the subjective quality of experience)”이라는 말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내가 지각을 할 때에, 어떤 일련의 인과 과정이 있고, 정보 처리 과정이 있는데, 이런 과정들(의식 경험)은 어떤 내적인 측면, 처리 과정이 있는데, something it feels like to be a cognitive agent가 있다. 생생한 색감각, 희미한 향기, 강렬한 통증, 혀끝에 걸려서 생각날듯말듯한 어떤 생각, 가려움, 실존적 불안 등등 이런 경험들은 모두 독특한 경험적 특질을 갖는다.

토머스 네이글은 (Thomas Nagel, "What is it Like to be a Bat?)에 따라서, 어떤 존재가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something it is like to be that being(그것임이란 어떤 것인가? 그 존재가 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이 있다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심적 상태가 의식적 상태라는 것은 그 상태에 있음이 어떤 것인가 말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심적 상태가 하나의 질적 느낌(qualitative feel)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현상적 특질(phenomenal qualities)라고 말할기도 하고 또는 줄여서 감각질(qualia)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현상적 특질을 설명하는 문제가 바로 의식을 설명하는 문제, 이것이 심신문제의 진짜 어려운 대목이다.

  도대체 왜 의식적 경험이 있는가? 이것은 주관적 관점에 핵심적인 물음이지만 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얘기치 못한 문제이다. 객관적 관점을 설명하는 것은 두뇌가 복잡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라는 사실에는 어떤 심오한 철학적 신비도 없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당혹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의식 경험의 존재는 이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새로운 특징인 것 같다.

의식경험은 자연 세계의 일부로서 다른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설명을 요구한다. 여기서 설명되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의식의 존재 : 왜 의식 경험이 존재하는가? 그것이 물리적 체계에서 생겨난다면 어떻게 생겨나는가? 의식 그 자체는 물리적인가? 아니면 물리 체계의 어떤 부순물인가? 의식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인가? 예컨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도 의식 경험을 하는가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의식 경험의 구체적인 특성이다. 의식 경험이 존재하는 걸로 치고 개개의 경험들은 왜 그런 특성을 갖는가? 내가 눈을 뜨고 왜 이런 종류의 복잡한 경험들을 갖는가? 왜 빨간 색은 다르게 보이지 않고 그렇게 보이는가? 내가 빨간 색을 볼 때 파란 색을 볼 때 갖는 경험을 갖는 것도 상상할 수 있는데, 왜 내가 빨간 색을 볼 때, 파란 색 경험이나 섹스폰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지 않고, 빨간 색을 볼 때 갖는 그런 경험을 갖게 되는가?

이런의 사건 과정에서 왜 하나의 경험이 나오는가? 특히, 왜 그것이 그 특별한 경험을 일으키는가? 이것이 의식의 이론이 답해야 하는 두 가지 문제이다.

의식의 이론은 적어도 다음의 것들을 답해야 한다. 어떤 조건하의 물리적 과정이 의식인지를 밝혀야 한다. 또한 그 과정이 어떤 종류의 경험을 발생시키는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 의식의 이론은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해야하고, 궁극적으로 의식이 어떻게 자연 세계의 통합된 일부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런 이론은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이론이 어떤 것이될지도 생각하기 어렵다.

“의식”은 애매한 말로 여러 가지 현상을 가리킨다. 내성하는 능력이나 자신의 내적 상태를 보고하는 능력, 각성,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나 행동을 의도적으로 통제하는 능력, 뭔가를 앎, 등등 여기서는 언제나 경험이 주관적 특질을 가리키는 말로, 즉 what it is like to be a cognitive agent를 가리키는 말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과 같은 종류의 현상을 가리키는 말들도 많다. “경험”, “감각질(qualia), "현상학”, “주관적 경험”, “...임이란 어떤 것인가”등등, 이 말들이 의미상 여러 차이점을 갖지만, 또 이 말들 각각은 다양한 의미를 갖지만 여기서는 언제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써, 또 대개의 경우 “경험”이나 “의식”이라는 말로 사용할 것이다.


 

2. 현상적 정신 개념과 심리학적 정신 개념

(The Phenomenal and the Psychological Concepts of Mind)


 

  현대 인지과학이 의식에 대해서는 할 말이 거의 없으면서도 정신 일반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점은 분명, 인지과학은 정신의 다른 측면을 주로 다루었던 것, 즉 정신을 통하여 행동을 설명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인지과학이 다룬 정신 상태들은 행동을 인과하고(환경적 자극과 반응), 그것을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정신 상태, 그런 상태는 의식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지과학의 관점에서보면 행동을 발생시키는 내적 상태는 의식되건 안되건 모두 정신 상태이다. 이것의 근저에 아주 상이한 두 가지 정신의 개념이 있다. 첫째는 현상적 정신 개념, 이것은 의식 경험으로서의 정신 개념, 의식적으로 경험된 심적 상태로서의 정신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두 번째 정신 개념은 심리학적 정신 개념으로서의 행동의 인과적 설명적 기반으로서의 정신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심적 상태란 행동의 발생에 있어서 인과적으로 기능하는 내적 상태이다. 현상적 개념으로서의 정신은 그것이 느껴지는 방식에 의해서 특징지워지며, 심리학적 개념으로서의 정신은 그것이 하는 것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이 두 개념 간의 경합은 없다. 어느 것도 유일하게 옳은 정신 개념은 아니다. 이 두 개념은 서로 다른 현상을 지시한다.

정신의 현상적 또는 심리학적 “측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상적 정신”, “심리학적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이 두 가지가 동일한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현상적 상태는 행동의 인과와 설명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떤 심리학적 상태일 수도 있다. 또 모든 심리학적 상태는 현상적 상태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 상태가 현상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 느껴진다는 것이고, 한 상태가 심리학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적절한 인과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감각은 현상적 개념이라고 가장 잘 이해된다. 어떤 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느낌을 갖는 상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학습이나 기억은 심리학적 상태라고 아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습한다는 것은 환경 자극에 따라서 적절하게 자신의 행동을 적응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적”이라는 말의 용법은 하나의 약속이다. 이것은 심리학을 위에서 말했던 바 인지과학과 동일시한다. 일상적으로 “심리학적 상태”라는 말은 이 보다 넓은 개념으로 아마도 현상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다.


 

얄팔한 역사 (A potted history)


  현상적 개념과 심리학적 개념은 아주 긴 혼동의 역사를 갖는다. 데카르트는 정신이 주관에 대해 투명하다는 입론으로 그는 정신적인 것을 현상적인 것과 동일시하였다. 그는 정신의 모든 사건을 생각함 cogotatio, 즉 경험의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도, 의지 등과 모든 사고 유형들을 포함시켰다.

정신을 두 측면을 구별해준 것은 철학보다는 심리학 이론의 진보였다. 약 1세기 전에 분트와 제임스 등의 심리학자들은 행동의 원인을 탐구하기 위하여 내성을 사용하였던 점에서 데카르트적이었으며 내성적 증거를 토대로 심리학 이론을 전개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심리학에서 행동주의 운동은 내성주의적인 전통을 철저하게 거부하였다. 새로운 “객관적” 심리학적 설명이 발전되었으며 여기에 의식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이러한 설명이 거둔 성공은 미미하였으나 현상적인 것이 무시된채로 심리학적 설명이 전개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확고해졌다. 행동주의자들의 성향은 다양한데, 어떤 자들은 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심리학적 설명에 무관하다고 여겼고 어떤 이들은 의식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였다. 많은 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내적인 정신 상태 전체를 부인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행동의 설명이 어떤 식으로든 현상적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정통으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것은 인지과학에서도 그대로 이행되었다. 내적인 상태의 역할은 복구되었지만 이 내적 상태에 현상적인 요소는 없었다.

철학에서 현상적인 것에서 심리학적인 것에로 강조점의 이동은 길버트 라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의 입장은 논리적 행동주의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는 모든 심적인 개념들은 관련된 행동 유형 또는 행동의 성향에 의해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상적 상태에 대한 문제 이외에도 라일의 견해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심적 상태들은 행동을 인과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만일 심적 상태 자체가 행동 내지 행동 성향이라면 이것들이 어떻게 인과적 일을 하는지 그림이 이상해진다. 둘째로, 어떤 심적 상태도 단일한 영역의 행동 성향으로 정의될 수 없다. 예컨대 지금 비가 온다는 믿음은 내가 가진 다른 믿음, 욕구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다양한 행동과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주어진 심적 상태를 어떤 행동 성향과 연결시킬려면 다른 심적 상태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주로 데이빗 루이스와 데이빗 암스트롱에 의해서 전개되었던 기능주의라고 알려진 입장에 의해서 타개되었다. 기능주의에 따르면 하나의 심적 상태는 전적으로 그것의 인과적 역할에 의해서, 즉 그것을 산출하는 자극들, 그것이 산출하는 행동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심적 상태와 상호작용하는 방식들에 의해서 정의된다. 이런 견해는 위의 두 문제를 해결한다.

 

3. 심적 용어들의 이중성 (The Double Life of Mental Terms)

 


  현상적 개념에 대한 이런 분석은 왜 사람들이 이 문제에 곤혹스러워 하는가를 전혀 해명하지 않는다. 어떤 상태가 어떻게 인과적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에는 전문적으로 문젯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대단히 신비로울 게 없다. 신비스러운 것은 왜 그 상태가 어떤어떤 식으로 느껴지는가 하는 것이다. 왜 그것이 어떤 현상적 특질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기능주의적 분석은 이 두 문제가 다른 문제라는 걸 부인하므로 불만스럽다. 기능주의적 설명이 현상적 개념들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운 분석을 주지만 학습, 기억, 믿음 등의 다른 심적 개념들에 대해서는 좋은 분석을 줄 수도 있다. 기능주의적 설명은 내가 심리학적 속성에 대하여 주었던 정의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대개의 비현상적 심석 속성들은 이런 부류에 속하며 따라서 기능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특정한 기능적 분석들의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또 심리학적 속성들을 특징주는 데 있어서 환경의 열학은 무엇인가, 심리학적 속성들과 행동 간의 연결이 인과적인가, 설명적인가 둘 다인가 등에 대하여 굵직한 문젯거리들이 있다. 여하늩 비현상적 심리 상태들은 그것들이 우리의 인지 시스템에서 하는 역할에 의해서 설명된다.

  심리학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은 둘 다 정신의 실재하는 별개의 측면들이다. 현상적 개념들은 정신의 일인칭적 측면을 다루고, 심리학적 개념들은 삼인칭적 측면들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행동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정신이 하는 역할에 관심을 두면 심리학적 정신 개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심적 상태의 의식적 경험에 관심을 가지며 현상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현상적 개념과 심리학적 개념은 서로 상대방에 의해서 정의되지 않는다.

심리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이 심적인 것을 남김없이 규명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당해 보인다. 즉 모든 심적 속성은 현상적 속성이거나, 심리학적 속성이거나 아니면 이 둘의 결합이다. 의식 경험과 행동 이외에 설명을 요구하는 제 삼의 요소는 없으며, 따라서 제 삼의 비현상적, 비기능적 속성이 있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물론 지향적 상태, 감정적 상태 등등 다른 부류의 심적 상태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심리적이거나 현상적이거나 이 둘이 결합과 동일시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일상적 심적 개념들이 현상적인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를 모두 가지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태는 조금 복잡해진다. 통증이 그 명백한 예를 제시해준다. 이 말은 특별한 종류의 불쾌한 현상적 특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심리학적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유기체의 손상에 의해서 발생하는 성향이 있고 회피 반응을 일으키는 성향이 있으며, 등등의 성향을 가진 상태를 가리킨다. 이 두 측면 모두가 일상적인 통증 개념에 핵심을 이룬다. 통증 개념은 현상적 개념과 심리학적 개념 사이에서 애매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이 두 개념이 하나의 풍부한 개념의 요소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상적 속성과 심리학적 속성이 자주 혼동되는 이유는 분명하다.(동시발생) 관련된 속성들이 동시발생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직 손상(통증)에 의해서 야기되고 회피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이 진행될 때에는 모종의 현상적 성질이 나타난다. 즉 심리학적 통증이 있을 때 현상적 통증이 보통 함께 나타난다. 이러한 동시 발생은 개념적인 진리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하나의 사실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동시발생하는 속성들이 있으면 일상적 개념들은 이 둘을 묶어서 취급하는게 일반적이다.

이런 이중적 개념들 중에서 어떤 것은 현상적인 것에, 다른 것은 심리학적인 것에 치우쳐있다. 감각은 지각보다 현상적 측면이 강하다. 어떤 심적 개념 M이 주로 심리학적 개념인가 결정하는 검사법 : “어떤 것이 특별한 현상적 성질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M의 사례가 될 수 있는가?”하고 물어보면 된다. 될 수 있다면 M은 대체로 심리학적 개념일 것이고 아니면 현상적 개념이거나 이 둘의 결합일 것이다.  이 검사법은 예컨대 학습 개념은 심리학적인 거라고 시사한다. 학습한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고 자극들에 대처하도록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어떤 인지과정이 학습의 예가 되기 위하여 어떤 특정한 현상적 성질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런 성질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 과정을 학습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에 반해서 감정은 훨씬 더 분명하게 현상적 측면을 갖는다. 기쁨이나 슬픔을 생각할 때에 상이한 종류의 의식 경험이 연결된다. 그러나 한 상태가 감정이기 위해서 현상적 측면이 전부인지는 분명치 않다. 감정 상태들은 심리학적 속성과 관계된다.

심리학적, 현상적, 관계적 속성들이 고정되면 독립적으로 변할 수 있는 다른 심적인 요인은 없다. 이 세가지 속성에 있어서 나와 동일하면서 나와 다른 어떤 것을 믿는 사람을 상상할 수도 없다. 모든 심적 상태들은 심리학적 속성과 현상적 속성을 가지며 이 중에서 어느 편이 먼저인지 가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인 이 이외에 다른 속성은 없다는 것이다.


 

현상적 속성과 심리학적 속성의 동시발생

(The co-occurrence of phenomenal and psychological properties)

 


  의식경험은 언제나 진공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 과정과 묶여 있으며, 아마도 그 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다. 인과과정이 없이 현상적 경험만 갖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함께 다닌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이다. 현상적 속성과 심리학적 속성의 동시발생은 현상적 개념에 대한 어떤 심층적인 사실을 반영한다. 우리는 현상적 성질을 기술할 독립적인 언어가 없다. 현상적 성질들은 표현할 수 없는 점이 있다. 파랑은 풍부한 내적 성격을 갖는 독특한 감각이지만 우리는 그게 파랗다는 것말고 할 말이 별로 없다. 현상적 성질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과 연결되 외적인 속성을 빌어서 말한다. 현상적 속성을 기술하는 우리의 언어는 비현상적 언어에 의존적이다.

현상적 개념들의 이러한 인과적 기준 의존성 때문에 비트겐슈타인, 라일을 비롯한 사상가들은 심적 개념의 의미에 인과적 기준을 넘어서는 어떤 것도 없다고 시사하였던 것이다. 현상적 속성이 언제나 심리학적 속성을 끌어들여서 말해진다면 관련된 속성은 하나뿐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 초록색 감각을 말하는 것은 풀이나 나무 등 초록색 사물들에 의해서 인과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과 동일한게 아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가 풀이나 나무에 의해서 인과될 때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현상적 성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적 요소를 갖는 개념들은 순전히 기능적인 말로 분석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현상적 속성이 하나의 심리학적 속성 P에 의해서 포착될 때에 그 현상적 개념은 그냥 “P"가 아니라, ”P"에 동반하는 성향을 가진 의식 경험“이다. 중요한 점은 ”현상적 성질“이나 ”의식 경험“은 심리학적 개념들로 정의되지 않는, 원초적인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상적 “P"와 심리학적 ”P"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현상적 ”P"가 “심리학적 ”P"에 동반하는 성향이 있는 경험“으로 포착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심리학적 P가 없이 현상적 P가 나타나는 것을 모순없이 상상할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4. 두 가지 심신문제 (The two mind-body problems)

 


  심적 속성을 현상적 속성과 심리학적 속성으로 구별하면 심신 문제도 둘로 구별된다.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로, 정신의 심리학적 측면은 많은 인지과학에서 전문적인 문제들을 낳고, 철학적 분석을 필요로하는 많은 퍼즐들을 낳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어떤 심오한 형이상학적 난제도 주지 않는다. “한 물리 체계가 어떻게 학습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감각이나 의식일반에 관한 문제처럼 신랄하지 않다. “어떻게 어떤 물리 체계가 심리학적 속성 P를 갖는가?”하는 물음은 “어떻게 어떤 물리 체계의 상태가 이러저라한 인과적 역할을 하는가?”하는 물음과 동일한 것이다. 그 물리 체계가 어떻게 조직화되어서 환경 자극에 반응하여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가에 대하여 설명을 주면 이 물음은 대답된다. 전문적인 문젯거리는 엄청나지만 잘 정의된 탐구 프로그램이 있다.

심리학적 속성들은 어떤 철학적인 난점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기능적 개념이라는 데에 동의하더라도 필요한 기능적 분석이 어덯게 가야하는가에 대해서 아주 의미심장한 견해 차이가 있다. 또 이런 상위 차원의 구성물이 어떻게 진짜 인과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문제도 있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심각한 것들이다. 심리학적 속성들은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퍼즐에 가깝다. 여기서 상황은 생물철학에서의 상황과 비슷한다. 심리학적 속성들의 심신 문제는 대게 해소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아 있는 것은 더 세세한 전문적인 문제들로서 이것들을 과학적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정신의 현상적 측면은 전혀 문제가 다르다. 여기서 심신 문제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당혹스럽다. 물리과학과 인지과학의 인상적인 진보는 인지적인 작용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의식 경험에 의해 동반되는가에 대해서 어떤 의미있는 빛도 주지 못하였다. 정신의 이해에 있어서 진보는 오직 행동의 설명과 관련해서만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진보는 의식 경험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심리학적/현상적 구별이 심신 문제를 두 개의 별개의 분해하는 걸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심신 문제의 가장 어려운 대목은 “한 물리 체계가 어떻게 의식 경험을 일으키는가?”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것과 의식 경험의 연결을 두 부분으로 분해할 수 있다. 물리적인 것과 심리학적인 것의 연결과 심리학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의 연결,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어떻게 물리 체계가 심리학적 속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꽤 괞찮은 생각을 갖고 있다. 심리학적인 심신문제는 해결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이런 심리학적 속성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현상적 속성들에 의해서 동반되는가, 예컨대 왜 통증과 연결된 모든 자극들과 반응들은 통증 경험에 의해 동반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남아 있는 문제를 심신(mind-mind)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상적인 속성과 심리학적인 속성 사이의 긴밀한 상관관계는 심층적인 연결을 시사한다.

 


5. 두 가지 의식 개념 (Two concepts of consciousness)

 


  “의식”개념 자체가 현상적 의미와 심리학적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의식은 다양한 심리학적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심리학적 속성들을 묶어서 지금까지 강조해온 현상적 의식과 대비시켜서 심리학적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의식(consciousness)과 자각(awareness)

 


  경험 자체와 관련된 또는 현상적 의식 자체와 연결된 심리학적 속성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을 awareness(자각)이라고 한다. 자각은 대체로 우리가 어떤 정보에 접근해서 그 정보를 행동의 통제에 사용할 때 갖게 되는 상태라고 분석될 수 있다. 우리는 환경의 어떤 대상을 aware할 수도 있고, 자신의 신체의 상태를 aware할 수도 있고, 자신의 심적 상태를 aware할 수도 있다. 정보의 자각은 일반적으로 그 정보에 의존해서 행동을 결정짓는 능력 일으킨다. 이것은 분명히 기능적 개념으로서 일상어에서 awareness는 자주 consciousness와 동의어로 사용되는데, 나는 그것을 기능적인 개념으로 한정해서 쓰겠다.

현상적 의식이 있으면, awareness도 있다. 내 옆에 있는 노란 책에 대한 나의 현상적 경험이 awareness에 의해 동반된다는 사실은 의식적 경험이 보고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명백해진다. 내가 어떤 경험을 가지면 나는 내가 그것을 가진다는 사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내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이러한 보고가능성은 내가 그것에 aware한다는 것을 바로 함축한다. 동물이나 언어를 못 가진 인간의 의식 경험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보고할 수 없을 수 있지만, 그러한 존재도 일정한 정도의 awareness를 가질 것이다. Awareness는 보고 능력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의식은 언제나 awareness에 의해서 동반되지만 awareness는 언제나 의식에 의해서 동반될 필요가 없다. 어떤 사실을 aware하면서도 어떤 연결된 현상적 경험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awareness라는 개념을 제한해서 그것에 언제나 현상적 의식과 외연이 일치하도록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consciousness와 awareness의 개념적 coherent)

awareness 개념은 방금 열거된 다양한 심리학적 의식 개념들 거의 전부를 포괄한다. 내성은 내적 상태에 대한 awareness라고 분석되는 것이다. acess 개념을 통하여 해명될 수 있는 의식의 기능적 개념이 있다는 생각은 블록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그는 “현상적 의식”과 정보의 “접근 의식”이라는 구별을 한다. 블록의 접근 의식은 여기서 논하는 awareness와 거의 일치한다. 뉴엘도 거의 비슷하게 awareness와 consciousness를 구별한다. 그는 awareness를 “주관이 자신의 행동이 어떤 지식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비기능적 현상으로서의 의식과 구별한다.

 


의식의 설명과 자각(awareness)의 설명

 


  awareness도 다른 심리학적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문제를 거의 제기하지 않는다. 의식의 심리학적 개념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기억, 학습, 믿음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같은 차원이다. 물론 awareness 개념은 완전히 투명하지 않아서 개념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분석의 여지는 많이 있다. 더구나 이와 관련된 인지과학의 연구 영역은 엄청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프로그램의 개요는 비교적 명료하다.

의식이 정신의 과학에서 정말로 어려운 문제인 것은 현상적 의식 때문이다. 이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의식 체계의 물리적 계산적 기능들을 설명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왜 그 체계가 의식적 경험을 갖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난점이있다.) 심리철학(심리학)의 문헌들에서 심리학적 의식과 현상적 의식을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의식에 대하여 아주 만족한 설명에 멀리나마 근접한 설명들은 보통 심리학적 측면에 관한 것, 즉 현상적 측면은 대게 건드리지 않았다.

최근의 의식에 대한 철학적 분선들은 주로 비현상적 측면들을 다루고 있다. 로젠탈(Rosenthal)은 심적 상태가 의식적인 것은 심적 상태에 대한 상위 사고 있을 때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내성적 의식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쓸모 있겠으나 현상적 의식의 설명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데닛(Dennete)은 그의 책의 상당부분을 그가 의식의 설명이라고 제시하는 세세한 인지 모델을 개관하는데 바치고 있는 이 모델은 심적 상태를 언어적으로 보고하는 능력을 다룬다. 암스트롱은 의식이 자기의 정신에 대한 기능주의 이론의 장애라고 생각하고 이 개념을 어떤 자가-복제(self-scanning) 매커니즘으로 분석한다. 이것은 자의식과 내성에 대한 쓸모있는 설명이지만 현상적 의식은 접어두고 있다. 암스트롱은 지각적 의식과 내성적 의식 양자에 대해서 멀하는데 단지 awareness의 측면만을 다룬다. 이렇게 해서 그의 기능주의적 이론에 진짜 문제가 되는 의식은 개념의 모호성에 기대서 비켜간다.

“의식”에 대한 다른 글들은 주로 자의식이나 내성적 의식을 다루고 있다. 반 굴릭은 의식이 “반성적 메타심리학적 정보”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분석되어야 한다고 시사하는데 이것은 기껏해야 심리학적 개념에 대한 분석이고, 현상적 측면은 그러한 분석에 의해서 다루어지지 않음을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제인스의 의식 이론은 우리 자신의 사고에 대한 awareness만을 다룬다. 호프스태터는 의식에 대해서 재미있는 것을 말하지만 그의 관심은 경험 자체보다는 내성과 자유의지 그리고 자아감등이다.

의식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논의에서 현상적 개념과 심리학적 개념을 주의깊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 심리학 연구가 다루는 문제는 주로 내성, 중의력, 자의식 등 awareness한 측면만을 다룬다. 심리학에서는 최근까지도 의식의 심리학적 측면조차 그리 좋은 명성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그 개념이 불명료한 탓과 내성과 같은 상위 현상과 관련된 난점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 연구가 최근에 다시 의식의 문제로 집중되는 것 같다. 마치 의식의 심리학적 측면은 실제로 활발한 연구 주제가 된 듯하며 연구자들은 “의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겁을 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현상적 의식은 여저히 중심문제에서 제쳐져 있다. 이것은 이해할만도 한데, 실험심리힉의 방법들이 어떻게 다양한 종류의 awareness를 이해하는 데에 이를 수 있는지는 감이 잡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현상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인지과학의 모델들은 의식의 심리학적 측면들을 잘 설명한다. 물리 체계가 자신의 내적 상태를 내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또는 그것이 환경에서 접수하는 정보들을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는 그것이 환경에서 접수하는 정보들을 합리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는 그것이 처음에는 한 지점에 주의를 집중하고 다에는 다음 위치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등에는 엄청난 형이상학적 문제가 없다. 한 적절한 기능적 설명이 이런 능력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명료하다. 비록 올바른 설명에 도달하려는 몇십년 또는 몇 세기가 걸리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문제는 현상적 의식의 문제이며, 이것은 지금까지 제시된 심리학적 의식의 설명에 의해서 전혀 건드려지지 않았다.

앞으로 의식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현상적 의식만을 가리켜서 사용할 것이다. 심리학적 개념을 사용하려 할 때에는 “심리학적 의식” 또는 “awareness"를 사용하겠다. 앞으로 주로 다루게 될 문제는 현상적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