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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현대영미철학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

 

"과학 발전은 불연속적" 기존인식 뒤엎은 `혁명'

 

토마스 쿤의 기념비적 저작인 '과학혁명의 구조'(이후 줄여서 '구조')는 역설적이게도 오트 노이라트, 루돌프 카르납 등이 기획한 '통일과학의 국제적 백과사전'의 일부로 1962년 출간되었다.


노이라트와 카르납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영향력이 컸던 빈 학파의 구성원들로서, '논리실증주의' 또는 논리경험주의'라 부르게 된 과학철학적 견해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 학자들이다.


논리경험주의적 과학관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 활동은 이론 중립적 관찰과 논리적 추론이 근간을 이루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적 활동의 전형이며, 과학적 지식은 역사를 통해 연속적이고 축적적인 형태로 성장한다.


이에 반해 쿤은 과학사를 배경으로 그러한 과학관이 과학 활동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보이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쿤은 과학적 탐구를 공동체적 활동으로 파악하고 두 가지 이질적 과학 활동을 구분했다. 정상과학(normal science)과 과학혁명(scientificevolution)이 그것이다.


정상 과학'이란 동일한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의 공동체가 행하는 과학적 탐구 활동이다. 여기서 패러다임'은 쿤이 기호적 일반화, 모형 가치, 범례(exemplar)라고 부른 이질적 요소들의 복합체이다. 정상 과학에서 과학자들은 자기가 채택하게 된 패러다임을 시험하는 태도로 임한다. 정상 과학의 성격에 대한 이런 이해는, 중립적 관찰을 토대로 연산법적 규칙을 적용해 이론들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객관성과 합리성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던 기존 과학관과는 궤가 다른 것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에서 관찰 역시 다른 여러 가지 과학 활동과 마찬가지로 패러다임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 관찰에 대한 이런 견해는 관찰이 이론 중립적으로 이뤄진다는 당시의 방법론적 통념과 배치되는 동시에 논리경험주의적 과학관의 인식론적 구도를 뒤흔드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과학 혁명에 대한 논의에서 쿤은 과학 변동의 단절적이고 불연속적 측면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과학 혁명'은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패러다임 선택의 문제가 등장한다. 그런데 쿤은 패러다임 교체를 형태 전환(gestalt switch) 또는 종교적 개종에 비유한다. 이러한 비유는 경쟁하는 패러다임들을 평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초패러다임적 규칙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과 함께 과학자들의 패러다임 선택을 비합리적이 되게 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쿤은 자신도 패러다임 선택에는 나름대로 이유들' 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 이유들은 연산법적규칙 적용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폭넓게 공유하는 과학적 가치-예를 들어 정확성, 일관성, 단순성 등- 적용에서 비롯한다고 대응했다. 결국 과학자들의 이론 선택이 합리성을 결여한다고 말하기보다는 합리성에 대한 기존 개념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쿤의 주장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과학 혁명기의 경쟁 패러다임들은 공약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구조'에서 공약불가능성의 여러 측면이 언급되지만, 쿤 자신 이나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가장 많이 논의된 것은 의미상의 공약 불가능성이다. 과학 혁명기의 경쟁이론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조차 상이한 의미를 가지며, 경쟁 이론들 사이의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 논제는 즉각적으로 많은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비판자들은 그것이 경쟁 이론간 비교 불가능성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론간 비교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론선택은 비합리적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으므로, 과학에 대한 비합리주의는 공약 불가능성 논제의 불가피한 귀결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쿤은 미국 과학철학회(PSA)의 1982년도 모임에서 발표 한 논문에서, 자신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국소적 공약 불가능성'(두 이론에 공통적인 용어들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는 견해)에 해당하며, 따라서 공약 불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경쟁 이론간 비교가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쿤은 20세기의 과학철학 논의에서 역사적 전환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논리 경험주의자들이 과학적 발견의 연속성을 부각하는 쪽으로 치우쳤다면 쿤은 그 불연속성을 부각하는 쪽으로 치우쳤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따라서 과학에 대한 좀더 균형잡힌 시각을 확보하는 작업이 요구되며, 이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서울대 교수·과학철학).


조인래씨 약력> ▲1953년 생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 서울대 철학과 석사, 미국 존스홉킨 스대학 철학박사 ▲편역 '쿤의 주제 들: 비판과 대응'(1997) 공저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1999).

[20C 과학철학] 빈학파-포퍼 경험주의 핸슨 등이 비판

과학의 성격과 발전을 이해하려는 20세기의 철학적 논의들은 '통일'과 '경험'을 화두로 출발했다. 1920년 카르납으로 대표되는 빈학파(논리실증주의)는 모든 과학 활동을 '관찰 또는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열을 가하면 금속이 늘어 난다는 많은 관찰 결과를 모으면, "금속은 열을 받으면 팽창한 다"는 일반화가 귀납적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퍼는 아무리 많은 관찰 결과가 모이더라도, 단 하나의 반증 사례만 있으면 일반 법칙은 무의미해진다는 점을 강조, 귀납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그는 과학적 지식의 판단 기준으로 '반증 가능한가'하는 새로운 잣대를 제시했다.


1950년대부터 과학철학자들은 빈 학파와 포퍼의 '경험주의'에 집중적 비판을 가해 탈경험적 태도를 취한다. 콰인과 핸슨등 은 "관찰과 이론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핸슨의 표현에 따르면 "경험에 대한 서술이란 항상 이론의 등에 업혀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념적 틀이나 이론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실 그대로 된 관찰 문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핸슨의 이같은 태도는 쿤에게서는 '공약 불가능성'(incommesurability)이란 개념으로 발전한다. 예를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이 이후 뉴턴 과학이나 현대 물리학 관점에서 보면 아주 유치하지만, 2000년 이상 최고 이론으로 자리잡 았던 것은 나름대로, 이후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정교한 설명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과 근대 물리학은 서로가 완전히 공유할 수 없는(즉 공약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파이어아벤트에 이르면 쿤의 공약 불가능성은 더욱 극단적 형태를 띠게 된다. 경쟁하는 두 이론은 어떤 방식으로도 비교될 수 없고, 그 선택 과정은 철저히 과학자 개인의 주관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파이어아벤트의 주장을 흔히 '인식론적 무정부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모태준기자: taimo@chosun.com)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등 명저 남겨

토마스 쿤(Thomas Kuhn)은 1922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엔지니어인 사무엘 쿤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3년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버드 대학을 최우등(summa cumlaude)으로 졸업했고 49년 물리학박사를 받았다. 쿤이 과학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때쯤이다. 쿤은 당시 하버드 총장이었던 코넌트 박사의 권유로 학부생들에 게 자연과학개론을 가르치면서 과학의 발전이 '단선적이고 누적적' 이라는 기존 생각에 반감과 회의를 갖게 됐다고 한다. 이후 버클리 (1956∼64), 프린스턴(1964∼79), MIT(1979∼91) 등을 거치며 과학사를 가르치고 연구했다.


쿤은 과학 발전이 한 시대의 세계관(패러다임)에서 다른 세계관으로 바뀌는 '혁명적인 과정'이라고 본다. 과학혁명은 바로 한 패러다임 내의 과학이 모순으로 부글부글 끓다가 위기에 닥쳐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혁명가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 과학자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 법칙, 지식, 가치, 심지어 믿음이나 습관 같은 것을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 다. 쿤의 생각은 과학이 누적적 지식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당시 생각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쿤의 저서로는 문제작 '과학혁명의 구조'(1962) 이외에 구체적인 과학혁명의 예를 다룬 '코페르니쿠스 혁명'(1957)과 '흑체이론과 양 자 불연속성'(1978), 과학철학적 주제를 모은 논문집 '주요한 긴장' (1977)이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숙명여대 김명자 교수와 이화여대 조형 교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됐으며, 한국과학사학회는 지난 80년 한림대 송상용 교수 주도로 '쿤의 과학사 서술과 인접 과학 의 영향'이라는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쿤에게 직접 배운 서울대 김영식 교수는 "쿤은 남의 얘기도 잘 듣지만, 좀처럼 자기 이론을 굽히지 않는 토론쟁이" 라고 그를 기억했다. 사회학계에선 성균관대 정창수 교수가 쿤에 관심이 많다.

쿤이 1996년 6월 17일, 73세에 후두암으로 사망했을 때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사 과학철학자였다"(MIT의 제드 부발트 과학기술사 교수)는 평가를 받았으며 뉴욕타임스는 6월 19일 "그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 사이에도 상당한 논쟁을 촉발했다"는 조사를 실었다. (모태준기자)
            

자료출처

20世紀의 사상을 찾아서 (조선일보 시리즈 1999년 4월 14일 - 9월 15일, 김병길 엮음) http://nongae.gsnu.ac.kr/~bkkim/won/won_101.html